여러분, 혹시 기억나시나요? 파스텔톤 박스를 손에 들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던 그날들 말이에요. SNS 피드를 가득 채웠던, 크림이 흘러넘칠 듯한 '노티드' 도넛, 영화 아이언맨이 먹어서 더 유명해진 '랜디스' 도넛까지. 정말이지 대한민국은 '도넛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만큼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많던 도넛 가게 앞의 줄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마치 썰물처럼 인기가 빠져나간 느낌입니다. 한때 우리를 그토록 열광하게 했던 도넛의 시대는 왜 이렇게 허무하게 저물게 된 걸까요? 오늘은 그 달콤쌉쌀한 뒷이야기를 한번 파헤쳐 보겠습니다.

📸 '맛'이 아닌 '사진'을 소비하다

도넛 열풍의 시작은 단연 '비주얼'이었습니다. 특히 노티드 도넛은 전통적인 미국식 도넛과는 결이 달랐죠. "크림을 이렇게까지 넣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감한 필링과 화려한 비주얼은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위한 완벽한 피사체였습니다.


도넛 열풍의 시작은 단연 '비주얼'

이는 과거 반짝 인기를 끌었던 '뚱카롱' 현상과 정확히 닮아있습니다. 클래식 마카롱보다 훨씬 두껍고 화려한 뚱카롱이 SNS 인증샷 아이템으로 떠올랐던 것처럼, 도넛 역시 맛 이전에 '보여주기' 좋은 아이템으로 소비된 경향이 큽니다. 사람들은 도넛을 먹기 위해 줄을 섰지만, 어쩌면 그 줄과 인증샷 자체가 목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SNS 시대의 흥행 공식
'먹는다'는 경험이 '보여준다'는 경험으로 확장되면서, 음식의 비주얼은 흥행의 필수 조건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화려함은 자발적인 바이럴을 이끌어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 "건강에 나쁘니까?" 흔한 오해와 진실

"요즘 다들 건강 챙기는데, 튀기고 설탕 범벅인 도넛을 누가 먹겠어요?" 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리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저는 이 주장에 살짝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만약 건강이 유일한 이유라면, 지금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떡볶이와 마라탕의 열풍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실 나트륨과 탄수화물, 당분 함량으로 따지자면 이 음식들도 건강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건강식을 챙기다가도 가끔씩 이런 '일탈'을 즐깁니다.

⚠️ 잠깐! 정말 건강 때문일까요?
사람들의 소비는 이중적입니다. 건강을 추구하는 메가 트렌드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욕구도 공존합니다. 따라서 도넛의 인기 하락을 단순히 '건강 트렌드'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 진짜 이유: 우리는 원래 '도넛을 즐겨 먹지 않았다'

저는 도넛 열풍이 식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애초에 한국인의 주력 소비 품목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원래 자주 먹지 않던 음식은 유행 때문에 반짝 소비가 늘 수는 있어도, 유행이 끝나면 놀랍도록 빠르게 원래의 낮은 소비 수준으로 회귀합니다.

최근 유행했던 '두바이 초콜릿'이 좋은 예입니다. 작년 말, 한국에서는 순식간에 유행이 끝났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여전히 인기입니다. 왜일까요? 바로 '기본 소비량'의 차이입니다.

📝 초콜릿 1인당 연간 소비량 비교

국가 연간 소비량
🇨🇭 스위스 약 11.0 kg
🇩🇪 독일 약 9.0 kg
🇬🇧 영국 약 7.5 kg
🇰🇷 대한민국 약 0.7 kg

초콜릿을 원래 많이 먹던 나라에서는 두바이 초콜릿이 '먹던 초콜릿 중 하나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소비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소비량이 적은 나라에서는 '유행이니까 한 번 먹어보는' 일회성 경험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죠. 도넛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인들에게 도넛은 일상적인 아침 식사이자 간식이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 희소성의 역설: 줄이 사라지자 인기도 사라졌다

인기가 치솟자 노티드 도넛은 매장 수를 빠르게 늘렸습니다. 하지만 이는 '딜레마'를 낳았습니다. 매장이 늘어나니 더 이상 줄을 설 필요가 없어졌고, '어렵게 구해야 하는' 희소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언제든 쉽게 사 먹을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특별함도 함께 증발해 버렸습니다.


인기가 치솟자 노티드 도넛은 매장 수를 빠르게 늘렸습니다


이는 요즘 가장 '핫'하다는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전략과 대조됩니다. 런던 베이글 역시 화려한 비주얼의 한국식 베이글이지만, 매장 확장을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긴 줄을 유지하며 희소성을 지키고 있고, 어렵게 방문한 고객들은 한 번에 10만 원어치씩 사가는 '보상 소비'를 하게 됩니다. 만약 런던 베이글이 지금 당장 매장을 수십 개로 늘린다면, 과연 지금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자주 묻는 질문 ❓

Q: 그럼 이제 도넛 가게들은 다 사라지게 될까요?
A: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열풍이 불기 이전의 시장 규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넛을 정말 좋아하는 소수의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으로 재편될 것이며, 대중적인 인기를 다시 누리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Q: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인기도 결국 거품일까요?
A: 이 역시 도넛과 마찬가지로 '원래 한국인이 베이글을 즐겨 먹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현재의 인기는 희소성과 트렌드에 기인한 바가 큽니다. 만약 매장을 공격적으로 늘려 희소성이 사라진다면, 도넛과 비슷한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베이글은 '식사 대용'이라는 인식이 있어 도넛보다는 라이프스타일에 편입될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대전 '성심당'은 왜 여전히 인기가 많을까요?
A: 성심당은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퀄리티에 이 가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압도적인 가성비. 둘째, 대전 외에는 매장이 없어 '대전에 가야만 먹을 수 있다'는 대체 불가능한 희소성과 상징성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해 유행을 넘어선 독보적인 아이콘이 된 것입니다.

결국 도넛의 인기는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식어버렸습니다. SNS를 위한 비주얼 소비, 원래 즐겨 찾지 않던 메뉴라는 태생적 한계, 그리고 매장 확대로 인한 희소성의 증발까지. 어쩌면 모든 유행의 끝은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디저트를 즐겨 드시나요? 또 다른 새로운 유행이 올지, 아니면 저처럼 클래식한 맛으로 돌아가게 될지 궁금하네요!